건축 이토 도요 /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 구조 가나다 마쓰히로 / 도쿄예술대학 옻칠 도키 겐지 / 미야기대학 + 사토 가즈야 / 시젠코보 조경 이상훈 + 신다영 / VNH + 안팎 진행 리쉬이야기 <옻칠 집>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38-7 사진캡션 배형민
옻칠은 한반도, 중국, 일본에서 오랫동안 쓰여온 전통 자연 재료다. 일본에서 ‘우루시’라고 부르는 옻칠은 옻나무 수액에서 추출하여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도료이자 접착제다. 그릇, 냄비, 활, 농어업 기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온 옻칠은 생산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으며 산림 자원의 업사이클링에 기여한다. <옻칠 집>은 세계 최초로 옻칠을 건축의 구조재로 활용하는 창의적인 도전이다. 옻칠이 고급 공예의 범주를 벗어나 일상의 공간 환경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고장난 물건을 버리기보다 수리함으로써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옻칠이 햇빛에 노출되어 차츰 퇴색될 때 적절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옻칠 집>은 만드는 과정에 공예의 정성이 들어가는 만큼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옻칠 집은 지역과 시민의 애정을 전제로 하는 건축 작업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다.
마른 옻칠, 즉 건칠 기법으로 만든 조각상을 일본에서는 ‘간시쓰’ 조각상이라고 한다. 점토에 삼베나 면을 겹겹이 쌓고 옻칠을 여러 번 한 뒤 내부의 점토를 제거하여 속이 빈 조각이다. 건칠을 건축 기법으로 번안한 <옻칠 집>은 카본 파이버의 제작 원리와 유사하다. 고대의 장인정신과 현대의 조립식 건축을 융합하여 <옻칠 집>이 탄생한 것이다.
이토 도요 /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
옻나무에서 옻칠 채취 모습과 옻칠된 망사 면. 이토 도요 팀은 ‘간시쓰’라고 부르는 건칠 기법을 현대적으로 개발한 미야기대학 도키 겐지 교수, 옻칠 판을 건축 구조재로 개발한 도쿄예술대학 가나다 마쓰히로 교수와 협업하고 있다. 전통 건칠은 오랜 시간 칠과 건조를 반복하여 사포로 세밀하게 다듬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도키 겐지와 가나다 마쓰히로가 함께 개발한 기법은 정제한 옻칠을 황토, 쌀 풀을 롤러로 칠한 얇은 면을 PVC 판 위에 겹겹이 쌓아 구조적 성능을 얻는 방식이다.
옻칠 판을 대형 규격으로 작업한 다음 레이저 커터로 필요한 형태와 크기의 판재를 만든다. 공예와 산업의 중간 성격을 띠는 이런 작업 방식으로 <옻칠 집>의 옻칠 판이 제작되었다. 여섯 겹의 옻칠을 기본으로 하는데 햇빛을 받는 면의 세 겹은 UV 저항성이 띤 옻칠이 칠해져 있다. 이렇게 만든 시트를 벌집 모양의 프레임에 입혀 195개의 패널을 제작했다.
미야기대학 도키 겐지 교수의 옻칠 연구실. 연구실에 비치된 시설과 연구실에서 옻칠 장인들이 건칠 패널 작업을 하고 있다. 도키 겐지와 가나다 마쓰히로 교수는 지난 10년 옻칠의 확장을 위해 공동 연구해왔고 함께 회사를ㅊ설립하여 전통 그릇 같은 옻칠 제품뿐 아니라 직접 디자인한 가구도 생산하고 있다. 의자와 책상에는 옻칠을 활용한 구조재가 사용된다. 비행기와 자동차 몸체에 사용되는 탄소섬유의 원리로 건칠 기법을 개발했다. 미야기대학 옻칠 연구실은 전통 옻칠 건조장에서 첨단 디지털 장비까지 갖추고 있다. 도키와 가나다는 수천 년 거슬러 올라간 전통 공예 기법과 현대의 디지털 제작 및 로봇 기술을 적절하게 혼용하여 옻칠을 현대 산업에 맞게 확장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2023년 여름 도쿄예술대학에 설치한 지오크리트 셀 목업, 재료 실험 샘플, 지오크리트 기반 설계안. 이토 도요 팀은 지오크리트 셀을 목업 단계까지 진행했다. 목업 테스트 결과 거푸집을 사용하지 않는 지오크리트 구조의 완성도가 회의적이라고 판단했고, 옻칠 공예 기법으로 활용한 재료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 <옻칠 집>의 목표는 이와 같은 친환경 재료와 구법으로 광주 도심 공용 주차장에 작은 쉼터를 만드는 것이다.
지오크리트에서 옻칠로 방향 전환을 결정한 후 곧바로 옻칠로 셀 구조를 구현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셀을 구성하는 기본 부재를 3차원 곡면 패널로 구성하고 이것들을 와이어로 연결하는 디테일을 개발했다. 2023년 여름과 가을동안 도키 교수의 미야기대학 팀이 패널 샘플을 제작하고, 가나다 교수는 이토 도요 팀의 디자인을 따라 도쿄예술대학 학생들과 축소 목업을 만들었다.
1차 목업의 옻칠 패널은 3차원 곡면으로 구현되었다. 옻칠을 세 겹 칠한 평활한 시트를 별도 장치 없이 휘어서 벌집 모양의 틀에 접착제로 붙였다. 성공적인 목업을 바탕으로 실물 셀 구조를 디자인했는데, 구조 실험 결과 옻칠 패널 자체가 주 구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트를 여섯 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두꺼워진 옻칠 시트는 1차 목업처럼 쉽게 휘어지지 않아서 필요한 곡면을 만들기 위해 PVC 형틀을 테스트했다. 최종 디자인은 패널 하단면이 일방향의 곡면을 이루는 중재안으로 결정되었다.
패널 목업을 위한 종이 벌집 구조체. 옻칠 패널과 구조적으로 일체화할 수 있는 벌집 구조체의 재료를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목업에 사용했던 종이 소재나 목재를 검토하다가, 천연 소재의 섬유로 적절한 강도와 레이저 가공성이 충족되는 일본 회사의 기성 제품을 쓰기로 했다.
가나다 교수의 도쿄예술대학 구조 실험실에서 한국 팀이 제작한 옻칠 패널 샘플의 강도를 측정했다. 한국에서 제작한 샘플이 일본 샘플에 비해 강도가 70%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환폴리 기획팀은 이토 도요 팀의 메뉴얼에 따라 국내 옻칠 장인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패널을 다시 제작했으나 일본 샘플에 비해 구조 성능, 레이저 커팅의 정확도, 옻칠의 완성도 등에서 차이가 났다. 결국 옻칠 시트는 일본에서, 벌집 구조체는 한국에서 제작하기로 했다.
실제 셸의 디자인은 목업의 원칙과 일관되게 계란 모양으로 진척되었다. 두 개의 큰 개구부가 있는 초기안은 비정형의 소형 패널의 제작, 와이어 연결 방식, 개구부 아치의 경계 디테일이 지나치게 복잡했다. 그래서 최종안은 하나의 아치형 개구부만 있게 조정해 제작 원리가 심플한 디자인으로 수정했다. 가나다 교수는 <옻칠 집>의 구조 개념을 이글루와 비교해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