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한옥

건축과 R&D 어셈블 + BC + 아틀리에 루마 R&D 윤정원 / 생산 큐레이터, 김형기 / 조선대학교 건설재료연구실 제작 지원 드림라임, 클레이맥스, 고령기와, 세진플러스 시공과 설계지원 스튜가하우스 + 어반소사이어티 + 송련재 <이코한옥>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209-106 사진 캡션 윤정원, 배형민

어셈블, BC 아키텍츠, 아틀리에 루마는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아름답고 풍요로운 일상 공간을 만든다. 광주 도심, 버려진 한옥과 동네 마당을 복구하여 작지만 특별한 공간을 지역의 친환경 자원으로 만든다. <이코한옥>은 구성 재료의 추출, 가공, 제작 과정에서 다음 세 가지 생태적 원칙을 따른다. 첫 번째, 폐기물이나 저평가된 자원을 건축 자재로 사용하여 채취, 가공, 사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한다. 두 번째, 토착 지식과 현대 기술을 결합하여 저에너지, 저비용으로 품질을 극대화한다. 세 번째, 전문 지식, 노동, 자원, 지역의 네트워크 속에서 건축 생산의 역할을 설정한다.          <이코한옥>은 광주와 호남의 경제, 문화, 자원이 연결된 생태적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굴껍데기, 미역과 다시마, 건설 현장의 흙으로 만든 저탄소 소재를 현대적 건설 기법과 결합하였다. 국내외 재료 전문가, 제작 기업, 공예 장인과 협업을 통해 건축, 조경, 실내 요소 하나하나를 순환, 수리, 재활용의 가치로 세심하게 구현한다. <이코한옥>은 작은 프로젝트지만 지역 재생의 미래를 바라보는 공공의 가치를 창출한다. 지역 문화와 자원을 바탕으로 생태, 경제, 문화의 회복력을 지닌 자재를 개발한 <이코한옥>이 집을 짓는 방법의 전환과 확장을 기대한다.

어셈블 + BC + 아틀리에 루마

과정

광주시 동구 동명동 209-106. 1965년에 지어져 폐가가 된 한옥을 어셈블+BC+아틀리에 루마가 레노베이션했다. 디자인과 재료 실험을 진행하면서 국내 시공사와 설계 지원팀으로 스튜가하우스와 어번 소사이어티가 각각 합류했다. 한옥 도편수가 건물 상태를 조사한 결과 목재가 흰개미 피해로 손상된 것을 발견했다. 디자인 의도에 따라 지붕, 벽체, 바닥을 우선 걷어내고, 테크캡슐이 일련의 3D 스캔을 기반으로 목재 요소들의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낡은 지붕을 걷어내면서 수십 년간 짊어지고 있던 하중이 사라지면 부재들이 조금씩 느슨해진다. 새 기와를 얹고 적정한 하중을 가하면서 부재들의 수직 수평을 다시 맞췄다. 마지막으로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면서 한옥 목구조가 안정을 되찾았다.

2023년 11월 패각류와 폐골재를 배합하여 야외 벤치를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존 창고를 철거하며 나온 콘크리트, 시멘트 벽돌, 기와, 지붕의 흙, 폐목재를 마당 한 편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BC, 아틀리에 루마, 조선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팀이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멘트 벽돌을 망치로 깨 골재로 만들었다. 생석회를 일정 시간 물과 반응시켜 만든 핫라임과 모래알 크기로 분쇄한 굴 패각을 혼합했다. 벤치의 판을 만드는 작업은 다짐 흙벽과 유사하게 거푸집에 혼합물을 넣어 손다짐 달구로 다진다. 굴 패각과 현장에서 수집한 재료가 문양으로 켜켜이 드러난다.

김형기 교수의 조선대 건설 재료 연구실에서 만든 패각 석회, 재생 골재, 슬래그를 배합한 벽돌 실험체와 아틀리에 루마가 만든 실험체. 굴 패각 핫라임을 활용하기 위한 굴 패각의 소성, 수율, 밀링 분쇄 등의 특수 제작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다행히 굴 패각 대신 꼬막 패각을 소성하여 소독용 생석회를 생산하는 드림라임이라는 업체의 도움으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석회의 강도는 장기간 탄산화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에 현대건축의 표준 성능과는 다른 기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코한옥>은 시민들이 편히 사용할 공공시설이기에 일상적인 충격에 벽돌이 파손되어서는 안 된다. 생소한 국내 산업 생태계에서 BC, 김형기, 윤정원 등의 전문가들이 치열한 실험과 토론을 거듭한 끝에 제철 부산물인 슬래그 극소량을 벽돌에 혼합하는 방법으로 운송과 공사가 가능한 강도를 내는 배합과 제작 방식을 찾았다.

연구실 환경에서는 보통 10~20kg 단위로 벽돌의 배합과 제작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제 생산 환경에서는 재료를 톤 단위로 배합하고 한 번의 장비 가동으로 수백 장의 벽돌을 제작한다. 공장 생산에서는 미세한 실수나 차이가 시간, 인력, 비용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첫 제작 때 수백 킬로그램의 재료를 시험 제작 없이 바로 생산 라인에 투입하다가석회의 수화 시간과 반응 속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프레스로 생산된 벽돌이 모두 일순간 부풀어 올라 터져버렸다. 다행히 남은 석회와 패각을 바로 회수했고, 자동으로 양생고에 들어간 벽돌 외에는 모두 생산 라인에 재투입하여 2차 제작을 했다. 생석회에 물을 혼합하는 수화반응이 잘 이루어지려면 석회의 보관상태, 제작 환경, 순도가 매우 중요하다.

아틀리에 루마의 유약 테스트. 유럽과 달리 한국 전통 기와의 흙은 저온에서 소성되어야 한다. 아틀리에 루마에서 진행한 저온 유약 실험에서는 유약과 흙이 분리되거나 완전히용융되지 않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후 국내의 고령기와와 협의하여 한식 기와 유약의 배합을 다시 정하기로 하고, 바이오 재료를 결합하여 유약 성분을 최대한 순환 자원으로 대체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때 사용한 바이오 재료가 전복이나 굴 패각의 분말이다. 고령기와에서 두차례 유약 소성 테스트를 거쳐 최종 유약 성분을 결정했다. 소량 테스트에서는 전기 가마를 사용했는데, 대량 생산 단계에서 가스 가마를 쓰면서 온도 차이가 발생했다. 가스 가마에서 유약 일부가 바닥으로 흘러내려 눌어붙는 바람에 기와를 가마에서 꺼내는 과정에서 파손이 생겼다. 결국 필요한 물량을 1차 생산에서 확보하지 못했고, 2차 생산을 해야 했다.

세라믹 아티스트 김시월의 재생 기와 유약 테스트. 한옥 지붕에는 새 기와를 올리고, 골목과 마당 사이 담장과 마당의 우물에는 고재 기와를 재활용했다. 김시월 작가는 고재 기와의 수분 상태와 투명 유약, 굴 패작과 전복 패각 분말, 산화철 성분 등을 가늠하여 적절한 색과 질감을 찾았다.

세진플러스 공장에서 해초 패널 샘플을 제작하는 모습과 해초패널, 한지, 유약 샘플을 찍은 사진. 해초 패널의 원료는 파쇄된 다시마와 물뿐이지만 섭씨 100도의 열 속에서 고압으로 프레스 성형해야 한다. 건축 자재용 패널 제작을 위해서는 실험실의 소형 장비가 아닌 대형 장비가 필요했다. 고온 고압 프레스 성형 장비를 보유한 제조사들과 협력을 시도하였으나 소량의 실험 생산을 위해 기존 생산 라인을 멈춰야 해서 어려움을 겪던 차에 세진플러스를 만났다. 폐섬유를 고온 압착하여 패널을 생산하는 업체다.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생산 장비에 비해 패널 크기가 작아 별도의 형틀을 만들어야 했고, 공정에서 발생하는 열, 수증기, 압력으로 형틀이 휘는 문제도 발생했다. 또 고압 냉각 과정에서 무겁고 날카로운 형틀 때문에 생산 장비의 테플론 롤이 찢어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세진플러스와 협의하여 해초 패널을 위한 장비를 별도 제작하는 방안도 강구했으나 경제성과 효율성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건조된 다시마, 미역, 스피롤리나를 섞어 만든 한지. 한지 공방 장지방이 세 종류의 해조류를 조합하여 다양한 재질의 한지를 제작하여 재사용되는 창과 문에 도배했다. 아틀리에 루마가 디자인한 조명 기구에도 사용된다.          지붕과 벽체에는 전통적인 자연 단열재로 왕겨가 활용된다. 처음에는 어셈블+BC+아틀리에 루마가 목재 칩, 황토, 석회를 혼합한 무거운 단열재를 제안했으나, 지붕 하중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팀이 제안한 훈탄을 사용하였다. 훈탄은 벽체와 지붕 모두에 썼고 현장 시공과 사전 제작을 적절하게 병행했다.

<이코한옥>의 미장재는 성분에 따라 크게 석회와 흙으로 구분된다. 석회 계열에는 꼬막 패각을 소성하여 만든 산화칼슘과 굴 패각을 모래와 섞어 분쇄한 잔골재가 사용되었다. 질감을 내기 위해 3~4cm 크기로 크기로 부순 굴 패각을 거칠게 덧대는 방식, 반짝이는 전복 패각의 색과 입자가 잘 드러나게 스펀지로 닦아내는 방식을 적용했다. 흙 계열 플라스터는 굴 패각 골재나 스피룰리나의 천연 녹색 색소를 드러내는 방식이 있다. 건조 상태와 스피룰리나의 배합에 따라 갈라짐이 발생할 수 있어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 조율했다. 벽체는 대나무를 엮어 흙을 다져 붙이는 전통 흙벽으로 만들었다.